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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io3250 | 2014.06.03 00:55 | 조회 5826

       
     

    서럽고 한 많았던 인생
    나는 강원도 진부면에서 7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는데, 갓난아이 때부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생후 3개월도 안 되었을 때, 언니 등에 업혀 나갔다가 물에 빠져서 2km나 떠내려갔다. 그런데도 죽지 않고 살았다. 네 살 때에는 소죽이 펄펄 꿇는 솥에 빠져서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아버지가 여자아이니 고쳐야 한다고 하셔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내내 방학이면 서울에 올라가서 엉덩이 살을 얼굴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사고와 병치레로 고생하는 나를 보다 못한 아버지는 ‘시집가서 액땜하고 살라’며 22살 때 절집에 시집을 보내셨다. 남편은 4대 독자로, 대처승이었다. 스님이라고 하면서 고기도 먹고, 술 담배도 다 하고 사는 집안이었다.
    결혼생활은 이전보다 더한 고난의 시작이었다. 결혼하고 3일이 지난 후부터 산에 가서 나무를 해와야 했다. 일을 늦게 한다며 시어른이 내 목에 낫을 대는 일도 겪었다.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독한 마음을 먹고 시댁에서 나와 살림을 따로 차렸다. 절에서는 남편이 목탁만 두드리면 먹고 살았지만, 밖에 나오니 남편이 기술도 없고 농사도 지을 줄 몰라서 생계의 짐이 다 나에게 넘어왔다. 한복 바느질, 농사, 막노동…. 남편이 없다는 마음으로 닥치는 대로 일했다.

       
    어렵게 살던 시절, 큰딸을 안고    
    트럭을 운전하며 돌아다니던 남편은 집에 잘 붙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3남매 중 둘째와 셋째를 낳을 때는 혼자서 낳아야 했다. 둘째 아들을 낳을 때에는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갈 상황이 못 되었는데, 아이가 죽든 내가 죽든 하나는 죽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긴박했다. 산고를 겪다가 마지막에 힘을 다해서 아이를 잡아 빼냈는데, 아이가 울질 않았다. 목욕을 시키려고 대야에 담그니 그제야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나중에 시누가 나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의사가 “7시까지 깨어나지 않으면 이 사람은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5시에 정신이 돌아왔다.
    사는 게 힘들어서 교회를 나갔다. 나는 성경을 제법 많이 읽었는데, 어느 교회를 가도 참으면서 착하게 살라고만 하지 성경을 풀어서 이야기해 주는 곳은 없었다. 그런 중에도 남편은 온갖 사고를 일으키고 다녔고, 뒷감당은 내가 해야 했다.
    한복 바느질을 하여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싶었는데, 어느 날 시어른이 “아들이 4대 독자인데, 손자들이 보고 싶어서 못 살겠다” 하셔서, 남편과 시누가 트럭을 끌고 와서 다짜고짜 짐을 다 시댁으로 옮겨 시댁으로 다시 들어가기도 했다. 내가 사는 동안 38번을 이사했을 만큼 삶이 안정되지 못했다.

    처음으로 행복을 가져다준 구원, 그리고 지독한 핍박
    2000년에, 시동생 내외가 찾아와서 자신들이 다니는 교회에 가보자고 했다. 당시 모시고 있던, 나를 너무나 힘들게 했던 시어머니를 교회에 다니게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시동생이 이야기한 교회에 찾아갔다. 집회 중이었는데, 설교 말씀이 내가 다녔던 장로교회와 달리 신선하고 좋았다. 말씀을 계속 들어봐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렇게 계속 집회에 참석하면서 복음을 듣고 나는 구원을 받았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말씀에서 모든 것이 풀렸다. 구원받고 나니 처음으로 내 마음에 행복이 찾아왔다.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바로 기쁜소식강릉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가 살았던 ‘정동진’에 개발이 시작되고 있었고, 식당을 제대로 하는 집은 우리 집밖에 없었다. 공사하는 사람들이 다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었다. 그래서 식당을 크게 하려는 생각을 가졌는데, 목사님께 물으니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남편도 돈을 버니까 자매님은 신앙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하셨다. 목사님의 이야기를 좇아서 식당 일을 접었고, 그 후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돈을 벌지 않고 교회에 가는 시간이 많아지자 남편의 핍박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번은 가슴을 밟아서 갈비뼈가 세 대나 부러졌다. 남편은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삶도 어지러웠다. 한번은 어쩌다 집에 들어와서 내 코를 밟아 코와 입에서 피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분한 마음에 피를 닦은 휴지들을 다 모아서 비닐에 담아두었다. 후에 내 마음이 하나님 안으로 옮겨진 후에야 그 비닐을 버릴 수 있었다. 남편이 나를 거세게 핍박했지만, 이상하게 그럴수록 내 마음을 더 강해졌다.

    삼 남매 모두 주님 안에서 행복을…
    내가 구원받고 몇 년 후, 하나님의 은혜로 딸과 두 아들이 구원을 받았다. 먼저 첫째인 딸이 구원을 받았다. 두 아들은 교회에 가자고 하는 나를 많이 싫어했다. 그런데 어느 날, 큰아들 성태가 갑자기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니 의사가 급성맹장염이라며 위험하니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갑작스런 일 앞에서 아들은 마음이 낮아져서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 수술하고 보니 전혀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작은아들 성진이도 맹장염에 걸려서 병원에 가니 위험하다며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했고, 그 일로 마음이 무너져서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 수술을 하고 나니 둘째도 전혀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다. 참 신기하게 두 아들 모두 맹장염으로 입원한 상태에서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을 받은 것이다.

       
                       큰며느리(오른쪽 뒤), 손자와 레일바이크를 타며.
    2004년, 큰아들이 결혼하던 날 나는 너무 행복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며느리를 보았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그렇게 예뻤다. 나는 시집살이를 지독하게 했지만, 복음 안에서 만난 며느리는 내 생각보다 귀하고 서로 마음이 통해서 좋았다. 이따금 마음에서 시끄러운 소리도 올라왔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런 마음을 돌아보면서 내 마음을 버릴 수 있었다.
    2007년부터 우리 교회에 새 예배당 공사가 시작되었고, 두 아들은 공사에 전적으로 함께했다. 신기하게도 구원받지 않은 남편이 “우리 재산이 얼마지? 다 팔아서 예배당 짓는 데 드려라”고 했다. 둘째 아들이 가지고 있던 레미콘 차를 팔아서 건축 헌금을 했고, 남편은 우리 소유의 2층집도 팔아서 드리라고 했다. 그래서 내놓았는데, 안 팔려서 지금도 그 집에서 우리 부부가 살고 있다. 대신 다른 방법으로 헌금할 수 있었다.
    큰아들은 예배당을 지으며 교회 재정을 맡아 일하면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을 배웠다. 나는 불교 집안에 시집을 가서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냈기에, 우리 아이들은 예배당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아이들이 신앙생활을 하려면 교회에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마침 교회에서 새로 짓는 예배당의 지하층은 몇 가정이 살 수 있게 집으로 꾸민다고 했다. 잘되었다는 마음으로 두 아들에게 각각 한 동씩 신청하라고 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예배당이 다 지어지고, 두 아들은 그때부터 교회에서 살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둘째가 결혼했다. 새로 지어진 예배당에서 결혼하는 둘째 아들 내외를 보니 얼마나 기쁘던지…!
    두 아들은 건축자재를 만드는 회사에 같이 다니고 있다. 큰아들은 자녀가 넷이고, 둘째는 셋이다. 모두 교회 안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딸에게는 자녀가 둘이 있는데, 외손녀와 외손자도 엄마와 함께 교회에 나오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2013년 7월에는 큰아들이 강릉에서 제일 큰 아파트를 얻어서 교회에서 이사를 나갔다. 그 집을 사려고 두 사람이 계약했었는데, 계약금만 내고 잔금을 주지 못해 계약이 두 번 다 파기되었다. 그러는 중에 집 값이 내려갔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아들이 교회의 인도를 따라서 그 집을 살 수 있었다. 아들 회사에서도 도움을 주고, 자녀가 4명이라고 은행에서 아주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아들이 이사하는 것을 교회 형제 자매들이 다 기뻐하고 즐거워해 주니 더욱 감사했다.

    이렇게 행복하게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남편
    오랫동안 나를 핍박하던 남편은 한번 수양회에 참석하고, 다음 번 수양회에 참석해서 복음을 마음에 받아들였다. 남편은 이후 교회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가족이 교회에 가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지난 겨울, 강릉에 눈이 많이 와서 남편이 일을 하러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나와 함께 지내며 신앙

       
      구원받고 처음 맞은 생일에 남편과 케이크를 자르는 필자.
    에 대해 언쟁이 시작되었다. 그때 남편은 내가 이야기해준 로마서 8장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에 복음이 분명하게 자리잡았다. 그 후로 남편은 굉장히 바뀌었다. 전에는 “왜 아이들을 다 교회에 넣었어?” 하던 사람이 이제는 “아이들을 교회에 두길 정말 잘했어. 교회 안에 있어서 복을 입고 살아” 하고 말한다. 내가 그렇게 말할 때에는 받아들이지 않더니, 마음에 말씀이 임하니까 모든 것이 변했다.
    남편은 어린 시절에 엄마에게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데에다 나에게 잘못한 일도 있어서 내가 도망갈까봐 두려웠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온 가족이 행복을 찾게 된 것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 “정말 감사하다. 나 같은 놈에게 이런 가족이 있다는 것이….” 자신이 이렇게 행복하게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하루는 남편이 교회에 가는 길에 “내가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 하고 말하기에 “우리가 내려놓으니까 하나님이 붙드셔서 그렇지”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당신이 노후에도 건강한 몸으로 일할 수 있는 게 행복하지 않아?” 하고 덧붙였다. 며칠 전에는 남편과 두릅을 캤는데, 남편이 “교회에 가져가서 목사님 드리자” 하고 말했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정말 많이 변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친정 식구들에게도 복음의 빛이…
    하나님은 구원받지 않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는 우리 친정 식구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셔서 한 사람 한 사람 구원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먼저 친정어머니가 구원을 받으셨다. 어머니는 나이가 많아 죽음 앞에 섰을 때 가족들에게 “성태 엄마가 믿는 하나님을 믿어라. 나는 천국에 간다. 천국에서 만나자” 하고 평안히 돌아가셨다. 그 후로 큰오빠와 언니와 조카며느리가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 전에 어렵게 살던 나를 불쌍하게 여기던 친정 식구들이 이제는 우리 집에 오면 분위기가 정말 평안하다며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느냐며 궁금해한다.

    복음 안에서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얼마 전에 ‘강원 IYF 후원의 밤’ 행사가 있었다. 그냥 참석했는데, 내가 내는 작은 회비가 아주 귀한 일에 쓰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동안 내가 너무 적게 후원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이 나에게도 기회를 주시면 IYF 육영위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나는 배우지도 못하고 아는 것도 없고 나이도 많기에 ‘나를 써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목사님에게 물으니, 목사님이 “그 연세에 그런 마음을 가지시면 좋지요” 하고 말씀하셨다. 우리 장손이 귀하게 여겨져서 손자의 장래를 위해 매달 10만 원씩 적금을 들 생각이었는데, 그 돈을 복음을 위해 쓰면 하나님이 우리 손자를 돌봐 주시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 쓰는 물질을 하나님이 필요할 때마다 채워 주시겠다는 생각을 하니, 하나님이 일하실 것에 대한 기대감에 가슴이 뛰었다.
    연초에 ‘내가 복음 안에서 어떻게 살았나?’ 하고 지나온 날들을 하나하나 생각한 적이 있다. 되짚어 보니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세계 안에서 큰 복을 입고 살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복음 안에서 살지 않았다면 나는 남편과 헤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이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겠는가? 매일 농사일을 하거나 들에서 냉이를 캘 때도 하나님의 세계가 느껴지기에 채소들과도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 안에서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교회 성탄절 행사 때 찬송하고 있는 기쁜소식강릉교회 실버 팀(오른쪽 끝이 필자).
    얼마 전 내 생일 때 상에 케이크를 두고 손자 손녀들이 내 앞에서 율동하며 노래하는데, 참 행복했다. 살수록 행복하다는 마음이 든다. 내 인생에서 죽을 고비가 여러 번 있었지만 나를 죽음에 넘기지 않고 내 삶에 당신의 계획을 신실하게 펼쳐 가신 하나님! 늘 불안 속에서 살던 나를 구원의 방주 안으로 이끌어서 처음으로 행복을 느끼게 하시고 자유를 누리게 하신 하나님! 보잘것없는 나에게 소망을 주시고 환란을 이길 힘을 주신 하나님! 그래서 인생 말미에 누구보다 환하게 웃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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